· 홈으로  · 즐겨찾기 · 관리자

 
 
 

이 름
admin
제 목
[아침광장] 팥쥐 상징
파 일
파일없음

 

  • 경북일보


  •  


  • 양선규 대구교대 명예교수
  •  승인 2023년 11월 07일 15시 52분
  •  지면게재일 2023년 11월 08일 수요일



저는 ‘팥쥐’를 인생 상징, 혹은 제 삶을 감싸는 상징으로 여깁니다. 여기저기서 그런 의미로 사용합니다. 이를테면 저는 ‘팥쥐’ 정체성 소유자입니다. 그 내막은 이렇습니다. 저는 팥을 좋아합니다. 단팥죽, 팥빙수, 단팥빵, 팥밥 마니아입니다. 그중에서도 팥밥을 제일 좋아합니다. 어릴 때 자주 먹던 자줏빛 팥밥의 풍미를 여태 잊지 못합니다(팥을 싫어하는 콩쥐 아내와 살면서 평생 제대로 먹어보질 못합니다). 그다음 내막은 변덕스럽고 불안하고 천방지축이고 의존적이고 이기적이고 쾌락추구적인 제 성격입니다. 변덕이 팥죽 끓듯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겸손하고 책임감 있고 독립심 강하고 신중하고 이타적이고 인내심 강한 ‘콩쥐’ 스타일은 아닙니다. 제가 일찍이 남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노는 ‘글쟁이’(소설가)가 된 것도 어쩌면 그런 팥쥐 성격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후회는 없습니다. 콩쥐들의 세상에서는 별종 취급을 받습니다만 세월이 좋아져서 가끔씩 “너처럼 그렇게 살아도 과히 나쁘지는 않겠다”는 말을 들을 때도 있으니까요.

저의 팥쥐 상징이 나오게 된 직접적인 동기를 제공한 ‘콩쥐, 팥쥐’ 이야기에 대해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신데렐라 이야기’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콩쥐, 팥쥐 이야기’는 세계적으로 그 가짓수만 해도 300종이 넘습니다. 비슷한 이야기가 지역마다 풍토에 맞게 각색되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말이겠지요. 형제(자매)갈등 모티브, 생존 지상주의(기아의 극복), 결혼과 신분 상승에 대한 열망 등이 한데 얽혀 있는 이 이야기는 특히 여성 쪽에서 보면 인생의 질곡들이 총망라되어 있는 일종의 성장기 베이스캠프와 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금기(禁忌)의 준수, 노동의 승화, 성인식의 성수(成遂) 등 자아의 사회화 과정과 관련된 요점들이 고스란히 들어 있습니다. 그 지혜의 권고를 잘 수용한 콩쥐는 크게 성공하고 그렇지 못한 팥쥐는 비참한 파국을 맞습니다.

팥쥐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저는 어쩔 수 없이 팥쥐에게 동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팥쥐(신데렐라 언니)가 잘못된 것은 전적으로 자식을 끔찍하게 사랑했던 어머니 때문이었습니다. 자상한 어머니 덕분에 잘 먹고 영양 상태가 좋아서 발이 좀 컸을 뿐이었습니다. 콩쥐(신데렐라)처럼 영양실조로 작은 발을 가졌다면 굳이 유리구두에 발을 맞추기 위해서 발뒤축을 칼로 베어낼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팥쥐는 특별히 못난 아이도 아니었고 유난스럽게 주변의 부러움을 사던 엄친아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환경이 만들어낸 가엾은 피조물이었을 뿐입니다. 어쩌다 콩쥐라는 절대 강자(그 아이는 전 우주의 도움을 받습니다)를 만나서 재수 없게도 인생의 쓴맛을 보게 된 것입니다. 팥쥐가 받은 징벌은 너무 가혹했습니다. 불쌍한 팥쥐, 저는 그 아이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 한쪽이 아려옵니다. 저희 집에도 공부 잘하고 운동 잘하고 친구들한테 인기가 많았던 콩쥐가 한 명 있어서 엄마 치마폭에 싸여 살던 저를 엄청 힘들게 했습니다. 학교에 가면 “너는 어떻게 형의 반(半)도 못 따라 가냐?”는 말을 예사로 들어야 했고 멀쩡한 이름을 두고 꼭 ‘누구 동생’으로만 불려야 했습니다(최근에도 한 번 들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평생 “너 팥쥐지?”라는 추궁 속에서 살아온 것 같습니다. 아마 그 압박감 속에서 팥이 주는 단맛에 더 몰두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위로가 되는 생각이 하나 듭니다. ‘콩쥐, 팥쥐 이야기’를 누가 적었을까요?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 ‘현실에서 살아남은 자’가 적었겠죠? 저는 그게 팥쥐라고 생각합니다. 계모(엄혹한 현실) 밑에서 불쌍한 인생을 살다간 콩쥐에게 바치는 팥쥐의 진혼곡, 살아남은 자의 고해성사가 바로 ‘콩쥐, 팥쥐 이야기’가 아닐까요?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그런 잔혹한 자기 처벌적인 이야기가 가능했을 겁니다. 문득 그런 외로운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https://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46605
 

출처 : 경북일보 - 굿데이 굿뉴스(http://www.kyongbuk.co.kr)

 

      
No. 이 름 제 목 파일 조회수 날 짜
32 admin  완주군 이서면 콩쥐팥쥐마을 테마길에 성인문해 어르신 글귀    123 2024-01-04
31 admin  이서콩쥐팥쥐농악단 금상 수상    100 2023-12-28
30 admin  두꺼비는 장독대를 어떻게 막은 걸까?ㄷㄷ 콩쥐팥쥐 장독대 실사판ㅋㅋㅋㅋ #먹찌빠    137 2023-12-21
29 admin  국악뮤지컬 ‘황금똥 신콩쥐팥쥐전’ 12월 10일 아산 공연    173 2023-11-24
28 admin  시대의 문학거장이 미래세대에게 전하는 문화 유산    182 2023-11-17
27 admin  [아침광장] 팥쥐 상징    160 2023-11-10
26 admin  전라북도 문학 명소를 찾아라 - 콩쥐팥쥐마을    166 2023-11-10
25 admin  2023년 다시쓰는 콩쥐팥쥐    211 2023-10-31
24 admin  인천 다문화축제 베트남판 콩쥐팥쥐 음악 연극 ‘TAM CAM(떰 깜)’ 공연    245 2023-10-15
23 admin  한효주, '무빙' 남편 조인성 따라 미국行→"이거 '콩쥐팥쥐'"    236 2023-10-12
22 admin  신 콩쥐팥쥐 영양/위생 뮤지컬    294 2023-09-12
21 admin  “완주 와일드푸드 축제장서 자연소재로 그림에 담아요”    274 2023-09-12
20 admin  규방의 미친 여자들 "장화홍련·콩쥐팥쥐 속 진짜 빌런은 아버지"    310 2023-08-10
19 admin  남원필오케스트라, 가족오페라 ‘신콩쥐’ 공연 선보여    333 2023-07-25
18 admin  콩쥐냐, 팥쥐냐 - 전대지23, 7월 22일 10 ~ 12시    349 2023-07-10
  [1] [2] [3]  

 
 

회사소개  /   묻고답하기